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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잔빛17 2025. 10. 23. 00:35




  당신을 더듬을 흔적은 가득한데 정작 당신이 없다. 아키에스의 수도에도, 그리고 아마 아델하이트 영지에도.

  수도의 뒷골목은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찬데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줄곧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이것은 사랑이다. 초봄에 갇혀있는 나는 시리다. 날이 추워졌는데 라일락 향이 나는 것도 같다. 언젠가 읽었던 라일락의 꽃말은 매일 나를 괴롭힌다.

  아직도 종종 당신의 무덤가를 찾아간다. 흰 꽃다발 들고 익숙한 만큼 걸어 도착한 무덤가에는 어제, 그제, 그끄저께 놓아둔 꽃도 가득. 어쩌면 종종이라는 말로는 한참 부족할지도 모른다.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가니까. 그리고 가끔은 그곳에서 반나절씩 시간을 죽이기도 한다. 당신은 내가 오는 시간을 좋아할까?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어도 꽃을 사는 것을 멈추지는 않는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니다. 그야 마음 고백해 본 적 한 번 없지 않은가. 내가 당신을 아주 사랑했고, 사랑하고, 사랑할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자명하지만, 마음 고백해 본 적은 없지 않은가. 고백하지 않은 것은 순전히 당신 때문이다. 내가 당신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았으면 했다. 내가 당신의 후회가 되지 않았으면 했다. 그러나 나는 가끔 후회한다. 마음 고백하지 못한 것에 대해, 당신을 쉬이 보내준 것에 대해. 가끔이 아니라 거의 매일, 매시간, 끔찍하게도 후회한다. 그러다가도 곧 그러지 않으려 노력한다. 과거의 나는 옳은 선택을 했을 뿐이니까. 다만 지금의 나는 입안이 쓰다. 가끔씩은 이 모든 일을 생각하는 내 자신이 웃기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미 늦었으니까.

  울지 않겠다고 수십번 다시 다짐한 사람의 행보 치고는 참으로 청승맞은 구석이 있었다. 무덤가에 앉아있는 시간 내내 눈물을 흘렸지만 나는 알고 있다. 당신은 여기에 없다. 그 어디에도 없다. 고백 들어줄 이가, 갈 곳 잃은 사랑 받아줄 이가, 내 몸이고 마음이고 시간이고 전부 뺏어가 아껴줄 이가.

  나는 텅 빈 어딘가를 더듬다 불현듯 사랑을 느낀다. 아팠다.